2014. 12. 21. 23:03ㆍ복음생각
새해와 성탄절을 맞이하는 밤이 아름답습니다.
베란다 너머로 보이는 눈내리는 앞산 눈 덮힌 앞산이 베란다에 가득찹니다.
밤은 밤이되 하얀 밤입니다. 아이들 떠드는 소리도 아련히 들립니다.
성탄절 첫 미사 후에 내리는 눈송이는 축복인양 많은 이들이게 기쁨을 주어 희망적입니다.
눈 내리는 밤이란 시가 떠오릅니다.
이렇게 어딘지 모르게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밤이런만, 갑자기 가슴이 덜컹하고 내려앉습니다.
흰둥이 검둥이 생각에서입니다.
며칠 전부터 매일 밤에 이 두 마리가 잘 지나 다니는 정원 모퉁이에 먹이를 놓아두었습니다.
( 밤에 먹이를 내다 놓는 이유는 아파트 단지가 되어서, 주민들에게 짐승을 끌어 드린다는 비난을 받을까봐 주의하려는 것에서입니다.
사실은 제가 먹이를 주기 오래 전부터 검둥이 흰둥이는 우리 아파트의 손님이었지만요. )
이 두 마리는 고맙게도 사료를 잘 먹어 주었습니다.
성탄자정미사 후에 혹시 흰둥이 검둥이가 먹이를 찾으러 정원을 돌아다니지 않을 가해서 모퉁이에 서서 지켜보았는데, 이윽고 두 놈이 눈에 띄였습니다.
제가 사료를 흔들며 "검둥아 흰둥아" 하고 나즈막하게 불렀습니다.
그러자 이 두 마리의 주인 잃은 애완견들은 꼬리를 흔들며 제게 달려왔습니다. 다리 하나를 못 쓰는 검둥이가 먼저 달려 왔습니다.
먹이를 흰둥이 검둥이 앞아 내려놓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대개의 동물들은 먹이가 있으면 먼저 먹으려고 합니다.
서열상 강한 놈이 먼저 먹고, 그 후 나머지를 다른 놈이 먹습니다. 그러나 흰둥이는, 앞 다리가 하나 없는 검둥이가 먼저 먹도록 내 버려 두는 것이었습니다.
검둥이도 조금 먹더니 자리를 물러 나왔습니다. 흰둥이가 먹습니다. 그리고 흰둥이도 조금 먹다가 자리를 물러 나왔고 검둥이가 다시 먹이를 먹드라구요.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나하는 감동이 다가왔지만 이내 가슴이 아파집니다.
이 두 마리가 먹이를 다 먹은 다음 저를 바라보며 꼬리를 흔듭니다. " 끄응 끄응 "하고 울기도 하였습니다.
야생으로 절대 돌아 갈 수도 없으련만 그렇다고 돌보아 줄 주인이 나타나 주기도 요원하게 보입니다.
베란다 너머 눈 내리는 풍경을 보다가, 눈이 내리면 눈으로 먹이가 덮혀질테고, 눈이 사료 위에 쌓여 얼게되면, 쉽게 먹을 수도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눈 내리는 밤이 그저 축복이고 희망적인 것이 아님을 깨닳았습니다.
마당으로 내려가 정원 모퉁이에 놓은 먹이 그릇위로 쌓인 눈을 불어 줍니다. 먹이가 다시 드러납니다.
그러나 미끄러운 이 눈길을 검둥이가 잘 올 수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다시 애처롭습니다.
(우리 108동 아파트동 주민들은 대부분 길냥이들이 차 위에 올라가는 것을 싫어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올라간 흔적이 있음을 보고... "이 놈들이 아직도 살아있구나..". 하며 안도를 느낀다 합니다. 이분들에게도 성탄의 축복이!!!)
어느듯 제가 새로운 멍에를 매고있음을 느낍니다.
주님은 주님의 멍에는 꿀처럼 달고 가볍다고 하셨지만, 추위에 떨며 굶주리는 생명들을 생각하자니 애 닳기만 합니다.
그 생명체들은 따스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그리워 하지만 사정은 여의치 않아 보입니다.
흰둥이 검둥이에 대한 멍에가 언제까지 어깨에 걸려져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저 이러한 사소한 일이라도 주님께 영광이 된다면 기꺼이 질 수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주님의 영광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이 밤에 다시 질 멍에가 생겼습니다.
눈이 내리고, 내린 눈은 다시 얼어붙고 있다며,
제설작업에 대한 비상근무로서 당장 관할 지역 출동하라는 명령이 제 휴대전화를 통하여 방금 떨어졌습니다.
그래도 눈 내리는 오늘밤은 희망적입니다.
눈이 내려 온 세계를 하얗게 덮으니 아이들에게는 물론 희망적이고, 흰둥이 검둥이도 춥고 걸어오기는 힘들어도 먹을 먹이가 있으니 희망적이며,
서울 고바우 고갯길을 운전할 운전자 여러분에게는 당장 고바우 고갯길에 덮힌 눈들을 제거해 드리기 위해 달려가야 할 저희들이 있으니 희망적입니다.
새해에는 서로가 서로를 배려해 주는(배려에는 당연히 어떤 동물들도 배제되는 것 아닙니다.) 보다 따스한 나날이 될 수 있도록 살아가렵니다.
사람과 자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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