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2. 15. 18:17ㆍ가톨릭세상보기
2009 안중근을 만나다. 서울 예비신학생 중국문화탐사 동행취재(상) | |
평화신문은 안중근(토마스) 의사 의거 100주년을 맞아 '2009년, 안중근을 만나다'특별 기획을 마련, 일제 강점기 암울한 시기에 나라와 민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안 의사의 신앙과 삶을 재조명한다. 그 첫 걸음을 안 의사가 100년 전 이토 히로부미 사살을 위해 머물렀던 하얼빈 현장에서 출발한다. 서울대교구 예비신학생 34명이 참가한 청소년 중국문화탐사 프로그램 '도마 안중근'을 1월 12일부터 6일간 동행취재, 하얼빈과 의거 후 안 의사가 투옥됐던 뤼순(旅順) 감옥 등 현장을 방문했다. 이 프로그램은 (재)서울가톨릭청소년회(이사장 조규만 주교) 주관, 구립서초유스센터(관장 김남성 신부) 주최로 이뤄졌다. 에비신학생들과 함께 안 의사 발자취가 서려있는 현장을 둘러보며 나라와 사람을 향한 그의 사랑을 되새겨본 취재기를 먼저 두차례 걸쳐 싣는다. #젊은 독립운동가, 그를 만나다 하얼빈시 중심가에 있는 조선민족예술관 2층에 안중근 의사 기념관이 자리 잡고 있다. 이곳에는 안중근 의사의 생애와 의거 현장을 사실적으로 표현해 놓은 그림ㆍ모형 등이 전시돼 있다. 1879년 황해도 해주읍에서 태어난 안 의사는 천주교 신자였던 아버지 안태훈의 영향으로 18살 때 세례를 받았다. 세례 후 선교사로 활동하다 1905년 을사늑약으로 나라가 위기에 처하자 독립운동가로 활약했다. 1909년 침략의 원흉이었던 이토 히로부미를 하얼빈 역에서 사살한 후 이듬해 31살의 젊은 나이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기념관에서 학생들이 가장 관심을 보인 곳은 의거 현장을 재현해 놓은 모형이었다. 안 의사가 히로부미를 사살하는 상황을 모형을 통해 생생하게 본 예비신학생들은 좀처럼 눈을 떼지 못했다. 한 예비신학생이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는 안 의사의 모형 뒤에 바짝 붙어 향해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옆에서 지켜보던 김형석(서울 화양동본당 주임) 지도 신부가 "왜 안 의사가 아닌 이토 히로부미를 찍냐"고 묻자 그 아이는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할 때 안 의사의 심정을 느껴보고 싶었다"며 멋쩍게 웃었다. 히로부미를 저격할 당시 안 의사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던 그는 의거 전 반드시 거사가 성공할 수 있게 해달라고 하느님께 간절히 기도했다. 저격 직후 성호를 그은 뒤 '대한 만세'를 외친 사실은 그에게 신앙생활과 민족운동은 분리된 것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의거 전후의 안 의사의 신앙생활과 행동을 미뤄볼 때 그에게는 평화를 원하는 간절한 마음이 있었다는 것을 짐작해 볼 수 있다. 프로그램 참가 전 안 의사가 천주교 신자인 줄도 몰랐다는 조상희(제오르지오, 14)군은 "안 의사가 히로부미를 죽인 것은 우리나라와 세계 평화를 위해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며 "안 의사의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본받고 싶다"고 말했다. #총성 울려퍼졌던 '하얼빈 역' 안 의사의 발자취를 따라 하얼빈시를 둘러본 후 예비신학생 일행은 안 의사가 의거 후 수감됐던 뤼순감옥이 위치한 다롄(大連)시를 가기 위해 하얼빈 역으로 향했다. 1909년 10월 26일 오전 9시 반경, 하얼빈 역에서 총성이 울려퍼졌다. 이토 히로부미는 세 발의 총알을 맞고 그대로 쓰러졌고 곧 '대한 만세'라는 안중근 의사의 외침이 이어졌다. 그렇게 안 의사는 자신의 임무를 완수했다. 기차역 위치는 100년 전과 변함없지만 지은 지 얼마 안 된 역사(驛舍)와 안 의사의 의거를 알리는 표지판 하나 없는 역 주변에서 그때의 흔적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게다가 춘절(한국의 설날)이 얼마 남지 않아 인구의 대이동이 시작돼 대합실은 발 디딜 틈조차 없어 예비신학생들이 플랫폼으로 나가 저격 현장을 둘러 보는 것은 엄두도 낼 수 없었다. 이윽고 다롄행 기차가 도착하자 학생들은 쫓기듯 열차에 탑승했다. 안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장소를 둘러볼 잠깐의 틈도 없었던 것은 아쉬운 점이었다. #뤼순감옥을 향해 '칙칙폭폭' 기차 안의 잠자리는 무척 협소했다. 폭 50㎝ 정도의 몸만 간신히 누일 수 있는 3층 침대에 예비신학생들은 겹겹이 누워 잠을 청했다. 하얼빈의 추운 날씨를 헤치고 긴 시간 걸어 다니고, 역 대합실에서 1시간 넘게 서서 기다리고, 좁은 침대기차에서 하룻밤을 지내야하지만 힘들다고 불평 한 마디, 아프다는 소리 하나 하는 학생이 없다. 불평은커녕 예비신학생들은 "조금 힘들기는 하지만 언제 이런 경험을 또 할 수 있겠냐"며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여행이 될 것 같다"고 의젓하게 말한다. 사제성소가 있는 아이들은 역시 뭐가 달라도 다르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기차는 다롄을 향해 속도를 내기 시작하고 친구들과 속닥거리던 아이들의 목소리도 하나 둘씩 잦아들었다. 중국 하얼빈=임영선 기자 hellomrlim@pbc.co.kr | |
[평화신문 2009.02.0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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