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 오디오 볼륨을 잔뜩 올려놓고
오랜만에 베란다 난대 가운데 의자에 앉습니다.
지난 가을부터 화분 약 30여개는 처분하여 비교적 의자에 앉은 자세가 자유로웠으나 미안하기는 마찬가집니다.
서양란 파피오펠리움입니다. 어제까지만해도 봉오리만 풍성하였는데 오늘 이렇게 펴고 있군요...

어제의 파피오펠리움

서양란 팔레놉시스 일명 호접란이라고도 합니다. 꽃이 마치도 나비처럼 생겼다하여...

이십수년전부터 분재니 난이니 하는 것에 몰두하여
닥치는대로 여러 종들의 난들을 수집하였는데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마저 돌아가신 후부터는 이 애들에게 자주 얼굴을 비치지 못하였습니다.
어제 밤 앞산에(대현산 응봉산) 올라 20mm로 담아본 한강 정경입니다.

간식 좀 달라는 간절한 눈빛의 우리 재키

노빌이 다시 꽃봉오리를 품고 있군요....

난뿐 아니라 화초들은 주인의 발자국을 들으며 자란다합니다.
사년전 지금있는 부서에 오자마자 잘못된 검사와 치료로 몸이 상한 후부터 이 아이들에겐 더욱 거리가 생겨났고 지난해에는 비료 한 번 제대로 주지못하였습니다. 상한 몸의 치료는 거의 되었지만
제 몸이 앞으로 어떻게 될런지 모르겠다는 망상은 급기야 난이나 화초들을 앞으로는 잘 거두기 힘들겠다는 생각으로 난이나 화초들을 잘 기를만한 동료들에게 나누어 주곤 하였는데요.

다른 팔레놉시스는 꽃들을 피우기 시작하네요. 꽃대 하나에 3~9송이의 꽃들을 피웁니다.

어제 파피오펠리움의 꽃 봉우리

오늘 오전에 좀 쉬기위하여 집에 돌아온 후 저녁에서야 난들 사이에 제대로 앉아봅니다.
참 미안하네요
그동안 난들들이 저에게서 얼마나 소외되었는지 알것 같습니다.
약 2년만에 비료를 분무해주며 용서를 청해봅니다.
제 소홀함에도 잘 자라준 난들이 있는가하면 시들은 난들도 있습니다.
장생란 일종인 홍소정이는 벌써 꽃을 피운 후 졌고 덴드로비움 노빌도 꽃망울을 품고 있습니다.
이십수년전에 제주도 화산석에 붙여놓은 풍란도 구조한 아기 고양이들이 물어뜯곤 하였지만 다시 잘 자라고 있네요.
오늘의 파피오펠리움의 꽃봉우리


이렇게 정직한난들을 자주 찾지못하고 제 안일함만 취하였던 것에 진심으로 미안해집니다.
이제는 이름마저 잊아버린 난들도 있는데 주로 일본 장생란 종류나 한국춘란이나 중국 혜란게 소엽 계통의 소위 명품란들입니다.
사람의 특정 취미에 대한 사고방식이 이렇듯 허무하게 무너질줄 예전엔 알기나 했겠습니까만 그래서 그만큼 더 난들에게 미안합니다.
난대곁에 앉아 다짐을 합니다.
앞으로는 더욱 발자국 소리와 목소리를 들려주어 나비도 찾아오지 못하는 작은 화분에 심겨져있는 난들이 쓸쓸하지않도록.....

우리 직원이 입양해 간 구조한 어린 냥이들이 이십수여년이 넘은 풍란 잎꿑을 갉아먹었지만 잘 자라내요....
다리가 부러져있어 구조한 어린 길냥이 자매... 우리과 여직원이 두마리 다 가져가 잘 키우고 있습니다.

일년 내내 꽃을 피우는 제라니움

공중으로 번지는 비료 스프레이 분무가 상쾌합니다.
"앞으로 제 제 신상에 무슨일이 생기면 이 난들을 어떡하나?" 같은 망상대신에
"무슨일이 생기더라도 그대들 곁을 떠나지 않겠다" 라 속삭여 주겠습니다.
봄바람이 불어와 이제야 제가 제 정신이 들은 모양입니다.
난들이 제 발자국을 듣고 살듯
저도 저 난들의 모습을 보면서 살아가렵니다.
"정말 미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