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원적 구원론이란 무엇이나요?

2008. 2. 23. 15:39가톨릭교리단상

샬롬~!

솔찍히 이렇게 성실한 답변이 나올 줄 몰랐습니다.
감사합니다. [조정제 님]
실재로 제가 가지고 있던 카톨릭에 대한 궁금증들이 많이 풀렸고
또한, 카톨릭 교리에 대해 어느정도 수긍이 가기도 하는 군요.

이렇게 좋은 답변 하신분을 대하고 보니 제가
카톨릭에 대해 그전부터 가장 크게 가졌던 의문을
해결받고 싶은 욕심이 생기는 군요.
빈번한 질문일 거란 생각도 되는데요.
번거롭고 여러일로 바쁘시면 설명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만, 제 욕심에 채우기가 될 것 같으니 말입니다.

다원적 구원론 이라고 들어 보셨나요.
다시말해 산 정상으로 가는 등산로가
A.B.C...코스들로 있듯이 구원 또한 그렇다는 것이 인데.
[조정제 님]의 개인적 견해말고,
카톨릭의 견해를 알고 싶으데 말씀해 주실 수 있는지요.
.........

그리고, 제가 교회에서 잘 들어보지 못 한 표현이라 그런는 데요.
"우화적 표현"은 무엇을 말하는가요.
혹시 '비유'를 그렇게 표현 하시는 건가요...?

그리고, 제가 여러가지 질문드린 내용을
기독교 사이트로 반대 질문해 보시면
그곳 선교사님들이 성심껏 답변해 주시리라 믿고요.
그로인해 카톨릭과 개신교의 차이를 확인 하실거라
의심치 않습니다.
어쪘든 감사합니다.

[답변]-조정제

님께 우리 주님의 평화를 빕니다.
님의 질문에 대하여 아래와 같이 답변해 드립니다.
(참고로 저는 평범한 신자로서 항상 "가톨릭교회교리서"와 "가톨릭교회가르침(교황문헌, 제2치 바티칸공의회 문헌 등의 전문)"을 근거로 답변해 드립니다.^^
간혹 설명을 요할 때에는 이러한 근거 하에 제 설명을 덧 부치기도 합니다. 이 점을 참조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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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redibly님이 2003-04-24 오후 3:12:20에 쓴 글입니다.
<<샬롬~!
솔찍히 이렇게 성실한 답변이 나올 줄 몰랐습니다.
감사합니다. [조정제 님]
실재로 제가 가지고 있던 카톨릭에 대한 궁금증들이 많이 풀렸고
또한, 카톨릭 교리에 대해 어느정도 수긍이 가기도 하는 군요.
이렇게 좋은 답변 하신분을 대하고 보니 제가
카톨릭에 대해 그전부터 가장 크게 가졌던 의문을
해결받고 싶은 욕심이 생기는 군요.
빈번한 질문일 거란 생각도 되는데요.
번거롭고 여러일로 바쁘시면 설명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만, 제 욕심에 채우기가 될 것 같으니 말입니다.
다원적 구원론 이라고 들어 보셨나요.
다시말해 산 정상으로 가는 등산로가
A.B.C...코스들로 있듯이 구원 또한 그렇다는 것이 인데.
[조정제 님]의 개인적 견해말고,
카톨릭의 견해를 알고 싶으데 말씀해 주실 수 있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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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다원적 구원론"이란 말이 종교다원주의를 의미하지 않나 하는데요,^^
가톨릭교회는 종교다원주의를 배척합니다.

그러나 가톨릭교회는 언제나 그러하였고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는 다음과 같이 비그리스도교인에 대하여 선언하였습니다.

비 그리스도교인들 (교회에 관한 교의 헌장 "교회와 구원"에서)

16. 마침내, 아직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사람들도 여러 가지 이유로 하느님 백성에 관련되어 있다.
우선 계약과 언약을 받은 백성이 그렇다. 그 백성 중에서 그리스도 육신으로 태어나셨으니(로마9,4-5) 그 백성은 선택에 있어서 조상들 덕분에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백성이다. 선물과 선택은 변경되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로마11,28-29)
그러나 구원의 계획은 창조주를 인정하는 모든 사람도 포함되는 것이며 그 중에는 회교도들도 포함되어 있으니, 그들은 아브라함의 신앙을 보존한다고 주장하며 마지막 날에 사람들을 심판하실 자비로우신 유일신을 우리와 함께 흠숭하고 있다.

또 모르는 신을 영상 속에서 찾고 있는 사람들에게서도 하느님은 결코 멀리 계시지 않으니, 하느님은 모든 사람에게 생명과 호흡과 모든 것을 주시며(사도17,25-28) 구세주는 모든 사람이 구원되기를 원하시는 것이다.(1디모2,40

사실, 자기의 탓없이 그리스도의 복음과 교회를 알지 못하지만, 성실한 마음으로 하느님을 찾으며 양심의 명령으로 알려진 하느님의 뜻을 은총의 힘으로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영원한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자기의 탓 없이 하느님을 아직 명백히 인정하지는 못할지라도, 하느님의 은총으로 올바로 살아 보려고 노력하는 사람에게는 하느님의 섭리가 구원에 필요한 도움을 거절치 않으신다. 사실, 그들한테서 발견되는 좋은 것, 참된 것은 무엇이든지 다 복음을 받아들이기 위한 준비로써,
결국은 모든 사람이 생명을 얻도록 그들을 비추시는 하느님께로부터 주어진 것이라고 교회는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가끔 사람들은 악마에게 속아, 생각이 혼미해지고, 하느님의 진리를 거짓과 바꾸어 놓고, 창조주보다는 오히려 피조물을 숭상하며(로마1,21
혹은 하느님 없이 이 세상을 살다가 죽음으로써 절망에 빠지게 된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영광과 이 모든 사람들의 구원을 염원하는 교회는 "너희는 온 세상을 두루 다니며 모든 사람에게 이 복음을 선포하여라"(마르16,15) 하신 주의 말씀을 명심하여 포교 촉진에 진력하고 있다.

위의 문헌에서는 <하느님께서 자기탓이 아니 이유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선의의 비그리스도교인들에게도 구원의 섭리를 펼치시고 있음을 봅니다.

그사람들에게 대한 구원의 손길은 그 사람들의 믿는 종교나 사상의 힘이 아닌 바로 모든 이를 예수 그리스도로 모으시는 성령의 은총 안에서 하느님만이 안시는 방법으로 가능하게 될 것입니다.

여기에 대한 가르침은 <주님이신 예수님>이란 교황 요한바오로2세의 회칙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요한바오로 교황회칙, 주님이신 예수님>>

II. 구원 사업 안에서 강생하신 말씀과 성령

<9번 항목은 종교다원주의 현상을 말함, 10번부터는 종교다원주의를 배척함--->조정제 주^^>

9. 현대의 신학적 사고에서는, 나자렛 예수님께서 그분의 신성을 배타적인 방법이 아니라 다른 계시적 인물이나 구원적 인물들과 보완 관계를 이루는 방식으로 드러내시는, 특별하고 한정적이며 역사적인 인물이라고 여기는 접근법이 종종 나타나고 있다.
그리하여 하느님의 무한하고 절대적이며 궁극적인 신비는 인류에게 여러 가지 방식과 많은 역사적 인물의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나자렛 예수님께서는 이들 가운데 한 분이라는 것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어떤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말씀께서 인류와 통교하시고자 구원적 방식으로 시간의 흐름 안에 나타났던 많은 인물들 가운데 한 분이라는 것이다.

더욱이, 한편으로는 그리스도교의 구원의 보편성을 정당화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종교 다원주의의 사실을 정당화하고자, 강생하신 말씀의 구원 경륜 이외에도, 교회 밖에서도 유효하며 교회와는 무관한 영원한 말씀의 구원 경륜이 있다고 하는 견해가 제시된 바 있다.

이 영원한 말씀의 구원 경륜은, 비록 하느님의 현존이 강생하신 말씀의 구원 경륜 안에서 더욱 충만하게 존재하기는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에게만 해당하는 강생하신 말씀보다 더 큰 보편적 가치를 갖는다는 것이다.

10. 이러한 이론들은 그리스도교 신앙과 깊은 갈등 속에 있다. 신앙 교리는, 나자렛 예수님께서는 마리아의 아들이시며, 그분만이 홀로 아버지의 아들이시며 아버지의 말씀이시라고 선포한 것을 굳게 믿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말씀께서는 “한처음부터 하느님과 함께 계셨으며”(요한 1,2), “사람이 되신”(요한 1,14) 분과 같은 분이시다.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마태 16,16)이신 예수님 안에는 “하느님의 완전한 신성이 깃들여 있다”(골로 2,9). 그분께서는 “아버지의 품안에 계신 외아들이시다”(요한 1,18). “우리는 그 아들로 말미암아 죄를 용서받고 속박에서 풀려났습니다.

"----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완전한 본질을 그리스도에게 기꺼이 주시고, 그리스도를 내세워 하늘과 땅의 만물을 당신과 화해시켜 주셨습니다. 곧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님의 피로써 평화를 이룩하셨습니다”(골로 1,14.19-20).

성서에 충실한 바탕을 두고, 그릇되고 환원주의적인 해석들을 반박하면서, 제1차 니케아 공의회는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을 다음과 같이 장엄하게 묘사하였다.

“한 분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 하느님의 외아들, 영원으로부터 성부에게서 나신 분을 믿나이다.
하느님에게서 나신 하느님, 빛에서 나신 빛, 참 하느님에게서 나신 참 하느님으로서, 창조되지 않고 나시어, 성부와 한 본체로서 만물을 창조하셨음을 믿나이다.
성자께서는 저희 인간을 위하여, 저희 구원을 위하여 하늘에서 내려오셨음을 믿나이다. 또한 성령으로 인하여 동정 마리아에게서 육신을 취하시어 사람이 되셨음을 믿나이다.
본시오 빌라도 통치 아래서 저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수난하고 묻히셨으며, 성서 말씀대로 사흗날에 부활하시어 하늘에 올라 성부 오른편에 앉아 계심을 믿나이다.
그분께서는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러 영광 속에 다시 오시리니 그분의 나라는 끝이 없으리이다.”

28) 교회 교부들의 가르침에 따라서 칼케돈 공의회도 다음과 같이 고백하였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님, 신성에서나 인성에서나 완전하시고 한 분이시고 같은 아드님이시며, 같은 참 하느님이시며 참 인간이시나이다.
신성으로는 아버지와 일체이시고, 인성으로는 우리와 일체이시며, 신성으로는 시간 이전에 아버지에게서 나시었으며, 인성으로는 이 마지막 날에 우리와 우리 구원을 위하여 천주의 성모 동정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셨나이다.”29)

이러한 이유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새 아담이시며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형상’(골로 1,15)이신 그분께서는 완전한 인간이시며, 아담의 후손들에게 최초의 범죄 때부터 이지러졌던, 하느님과 닮은 모습을 회복시켜 주셨다.

--- 무죄한 어린양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자유로이 흘리신 당신 피로 우리에게 생명을 얻어 주셨고, 또 그분 안에서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당신과 화해시키시고 우리를 서로 화해시켜 주셨으며,
악마와 죄의 종살이에서 우리를 구해내시어, 우리가 누구나 바오로 사도와 함께 이렇게 말할 수 있게 하셨다.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나를 사랑하시고 또 나를 위해서 당신의 몸을 내어 주셨다?(갈라 2,20).’”30)

이에 대하여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성하께서는 명시적으로 다음과 같이 선언하셨다.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를 어떤 식으로라도 분리하는 것은 그리스도교 신앙에 위배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되신 말씀이시고 하나이며 갈라질 수 없는 인격이시니.---나자렛 예수님이 아닌 그리스도는 있을 수 없고, 이분은 하느님의 말씀으로서 모든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사람이 되신 분이십니다.
---하느님께서 모든 백성에게 주신 모든 종류의 선물, 특히 정신적 보화를 발견하고 평가하는 과정에서 그것들을 하느님의 구원 계획의 중심에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분리시킬 수 없습니다.”31)

그러므로 그러한 말씀의 구원 행위와 사람이 되신 말씀의 구원 행위를 분리시키는 것은 마찬가지로 가톨릭 신앙에 위배된다.

강생과 더불어, 하느님 말씀의 모든 구원 행위는 언제나, 그분께서 모든 백성의 구원을 위하여 취하신 인간 본성과 일치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다.

인성과 신성, 이 두 본성 안에서 작용하는 한 분이신 주체는 말씀의 단일한 위격이시다.32)

그러므로 구원 활동의 특성이 신성 안에서만 작용하는 말씀의 활동에서 비롯하며, 강생 이후에도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인성에서 ‘더 멀리 떨어진 상태로’ 그리고 ‘초월하여’ 이루어진다는 이론은 가톨릭 신앙과 양립할 수 없다.33)

11. 마찬가지로, 한 분이시며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서 계획하신 구원 경륜의 유일성에 대한 신앙 교리를 굳게 믿어야 한다.

이 구원 경륜의 원천과 중심에는, 창조와 구속을 위한 하느님 은총의 중개자이시며(골로 1,15-20 참조), 모든 것을 총괄하시고(에페 1,10 참조),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지혜와 정의 그리고 거룩함과 해방이 되시게”(1고린 1,30 참조) 하신 말씀의 강생의 신비가 있다. 그리스도의 신비는 실제로 하느님 안에서 이루어진 영원한 선택에서 그리스도의 재림에 이르기까지 본질적인 통일을 이루고 있다.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게 하시려고 천지 창조 이전에 이미 우리를 뽑아 주시고 당신의 사랑으로 우리를 거룩하고 흠 없는 자가 되게 하셔서 당신 앞에 설 수 있게 하셨습니다”(에페 1,4).

“모든 것을 뜻하신 대로 이루시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계획을 따라 우리를 미리 정하시고 택하셔서 그리스도를 믿게 하셨습니다”(에페 1,11). “하느님께서는 이미 오래 전에 택하신 사람들이 당신의 아들과 같은 모습을 가지도록 미리 정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는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미리 정하신 사람들을 불러 주시고, 부르신 사람들을 당신과 올바른 관계에 놓아 주시고, 당신과 올바른 관계를 가진 사람들을 영광스럽게 해 주셨습니다”(로마 8,29-30).

하느님의 계시에 충실한 교회의 교도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중개자이시며 보편적 구원자이심을 다음과 같이 강조하고 있다.

“하느님의 말씀을 통하여 모든 것이 생겨났고 그 말씀께서 사람이 되신 것은 완전한 인간으로서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고 우주를 새롭게 재창조하시려는 것이었다.
---성부께서는 그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부활시키시고 들어 높이시어 당신 오른편에 앉히시고 산 이와 죽은 이의 심판관으로 세우셨다.”34) 이러한 구원의 중개성은 또한 영원한 대사제이신 그리스도의 구속 희생의 유일성을 나타낸다(히브 6,20; 9,11; 10,12-14 참조).

12. 어떤 사람들은 강생하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말씀보다는 훨씬 더 보편적 성격을 갖는 성령의 구원 경륜에 관한 가설을 또한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 또한, 그와는 반대로 말씀의 구원 강생을 삼위일체의 사건으로 여기는 가톨릭 신앙에 위배된다.

신약성서에서, 강생하신 말씀이신 예수님의 신비는 메시아 시대(사도 2,32-36;
요한 7,39; 20,22; 1고린 15,45 참조)뿐 아니라 역사 안에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이전 시기에도(1고린 10,4; 1베드 1,10-12 참조) 성령께서 인류에게 발출하신 원리와, 성령께서 현존하시는 자리를 이루어 왔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의 신앙 의식에 이러한 근본 진리를 상기시켰다.

전체 인류를 위한 성부의 구원 계획을 제시하면서, 공의회는 한처음부터 계셨던 그리스도의 신비를 성령의 신비와 밀접하게 연결시키고 있다.35)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 세기에 걸쳐 교회를 건설하시는 모든 작업이 그분의 성령과 함께 친교 안에서 실현되는 행위로 묘사된다.36)

더 나아가, 그분의 성령과 함께 그리고 성령을 통하여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활동은 교회의 눈에 보이는 경계선들을 넘어 모든 인류에게 펼쳐진다.

지금도 그리스도께서 믿는 이를 성령 안에서 살아 있는 방식으로 당신 자신과 결합시키시며 그에게 부활의 희망을 주시는, 파스카 신비에 대하여 말하면서, 공의회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만이 아니라 그 마음에서 은총이 보이지 않게 움직이고 있는 모든 선의의 사람에게도 들어맞는 말이다.
사실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돌아가셨고, 또 인간의 궁극 소명도 참으로 하나, 곧 신적인 소명이므로, 우리는 성령께서 하느님만이 아시는 방법으로 모든 사람에게 이 파스카 신비에 동참할 가능성을 주신다고 믿어야 한다.”37)

그러므로 강생하신 말씀의 구원 신비와 성령의 구원 신비의 연결점은 명확하다.

성령께서는, 사람이 되신 말씀보다 역사적으로 먼저 살았던 사람들과 그분께서 역사 안에 오신 뒤에 사는 사람들을 포함하여,
단 한 가지 목표로 하느님께 부름 받은 모든 민족의 삶 안에 사람이 되어 계시는 성자의 구원 효력을 현실화하신다. 성부의 영은 성자께서 아낌없이 베풀어 주셨으며, 모든 이를 고무시켜 주신다(요한 3,34 참조).

이리하여, 최근에 교회의 교도권은 단일한 하느님의 구원 경륜의 진리를 확고하고 명확하게 상기시켰다.

“성령의 현존과 활동은 개인뿐 아니라 사회와 역사와 문화와 종교에도 도달합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성령의 능력으로 인간들 마음 속에서 이미 활동하고 계십니다.’
----또 같은 성령께서는 여러 가지 풍속과 문화에 내재하는 ‘말씀의 씨앗’을 뿌려서 그리스도 안에서 성숙하게 하십니다.”38)

우주 전체와 인류 역사 전체 안에서 성령께서 하시는 역사적이며 구원적인 역할을 인식하면서,39) 교도권은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이 성령께서는 예수님의 강생과 생애와 죽음과 부활에 작용하시고 교회 안에서 활동하시는 바로 그 성령이십니다.

그러므로 성령께서는 그리스도와 양자 택일을 하여야 할 존재가 아니시고 또 그리스도와 말씀 사이에 있으리라고 상상되는 어떤 허공을 메우는 존재도 아니십니다.

성령께서 사람들의 마음 안에, 문화 안에, 종교 안에 이룩하신 모든 것은 다 복음을 준비하는 것이며,
완전한 인간으로서 만민을 구원하시고 만물을 완성하시고자’ 성령의 힘으로 혈육을 취하신 말씀이신 그리스도와 관련되는 것입니다.”40)

결론적으로 말해서, 성령의 활동은 그리스도의 활동의 외부에 있는 것도 아니고 병행하는 것도 아니다.

하느님 아들의 강생과 죽음 그리고 부활의 신비 안에서 이루어지고, 성령의 협력으로 실현되었으며, 인류 전체와 우주 전체에 그 구원 가치를 펼치시는, 한 분이시며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구원 경륜만이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성령의 작용으로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서는 하느님과 나누는 친교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41)

주 :
29. ‘칼케돈 신경’: 「신앙 규정 편람」 301.
30. 사목 헌장, 22항.
31. 「교회의 선교 사명」, 6항.
32. 성 대 레오, Tomus ad Flavianum: 「신앙 규정 편람」 294 참조.
33. 성 대 레오, 「레오 1세 황제에게 보낸 편지」(Promisisse me memini): 「신앙 규정 편람」 318: “……in tantam unitatem ab ipso conceptu Virginis deitate et humanitate conserta, ut nec sine homine divina, nec sine Deo agerentur humana.”; 「신앙 규정 편람」 317 참조.
34. 사목 헌장, 45항; 트리엔트 공의회, 교령 「원죄론」(De Peccato Originali), 3항: 「신앙 규정 편람」 1513 참조.
35. 교회 헌장, 3-4항 참조.
36. 교회 헌장, 7항; 성 이레네오는 “교회 안에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친교, 곧 성령께서 위탁되어 있다.” 하고 주장하였다(「이단 반론」[Adversus Haereses], III, 24,1: 「그리스도교 원전」 211, 472 참조).
37. 사목 헌장, 22항.
38. 「교회의 선교 사명」, 28항; ‘말씀의 씨앗’에 대하여: 성 유스티노 순교자, 「호교론」(Apologiae), II, 8,1-2; 10,1-3; 13,3-6: E.J. Goodspeed 편, 84; 85; 88-89 참조.
39. 「교회의 선교 사명」, 28-29항 참조.
40. 「교회의 선교 사명」, 29항.
41. 「교회의 선교 사명」, 5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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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제가 교회에서 잘 들어보지 못 한 표현이라 그런는 데요.
"우화적 표현"은 무엇을 말하는가요.
혹시 '비유'를 그렇게 표현 하시는 건가요...?
그리고, 제가 여러가지 질문드린 내용을
기독교 사이트로 반대 질문해 보시면
그곳 선교사님들이 성심껏 답변해 주시리라 믿고요.
그로인해 카톨릭과 개신교의 차이를 확인 하실거라
의심치 않습니다.
어쪘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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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우회적 표현이라고 썼습니다.^^
마땅한 표현법이 없어 이런 표현을 썼습니다.
즉 그 뜻은 사무엘서의 저자는 당대의 여러 가지 언어 사유들을 당대의 표현대로 성서 기록을 하였다는 말과 같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직접> 받아 쓴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영감을 당대의 여러 관습된 표현을 통하여 즉 "우회적"으로 기록를 하였다" 라는 것입니다.^^

용어 잘못 선택했다가 혼쭐나는군요.^^

님의 호의에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다원적 구원론"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변은 "좀 길지만"^^
거듭하여 잘 읽어보시면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을 잘 알 수가 있으리라 믿으며,
님께도 도움이 많이 되시길 빌겠습니다.^^

님께 우리 주님의 평화를 가득하시길 거듭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