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 불멸과 지옥의 존재에 대하여
2008. 2. 23. 15:38ㆍ가톨릭교리단상
[질문] 여호와의 증인 신자인 어느 분과 인터넷 상에서 몇번 말을 주고받다보니.. 결국에는 이런 내용을 보내주셨는데.. 제 생각에는 성서를 해석하는 자체에 있어서의 차이같아.. 먼저 끝맺자했습니다.. 만약 (다른 분께서라도) 이런 질문을 하실때 어떻게 설명을 드려야할지 난감해서 여쭙니다.. 과연 이 분께서 말씀하신 것들에 대해 어떻게 설명해야할지요.. <여호와의 증인들은 지옥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는 없습니다. 단지 기독교에서 알려주는 것처럼 지옥이 영원한 형벌이 아닌, 사람이 죽으면 누구든지 가는 인류의 공통 무덤으로 보는 것입니다. 성서를 살펴볼 때에는 물론 앞뒤 문맥을 살펴보면서 고려해 보아야 합니다. 하지만 님의 말씀처럼 '죽으면은 사람은 아무것도 모르게 되고, 존재가 없어진다'라고 해석할 것이 아니라.....라고 하시는데, 왜 성서에 그렇게 쓰여져 있는것을 다르게 해석하시는거죠? 전도서 9장 10절에 보면, '음부'즉 지옥, 시올에는 일도 없고 계획도 없고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다라고 분명히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다. 님의 말씀처럼 "세속과 관련된 모든 것은 죽음과 함께 사라진다"라는 말은 사실입니다. 사람이 죽으면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5절에서는 두가지 상태를 비교함면서 산자와 죽은자에 상태를 대조해서 알려주는 것입니다. 분명히 이 구절에서 죽은 자는 "아무것도 모른다"라고 정의를 내리는데 그것을 가지고 어떻게 다르게 해석하시는거죠? 그리고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어떠한 고통을 알수가 있을까요? 또한 님께서 예전에 예레미야의 말씀을 가지고 사랑과 정의는 다르다라고 계속 반론을 하셨던 것으로 기억하는데요... 그 구절은 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제물로 사람을 죽이는 행위들에 대해 하느님께서 경악하시고 꾸짖으시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고려해 보아야 할 것은 여호와께서는 분명히 "자녀들을 불태우는 일"을 자신의 마음에서 생각해 보신적이 없으시다는 사실입니다. 만일 그 일이 하느님의 마음에 전혀 생각지도 아니한 일이라면, 그분이 더 큰 규모로 그러한 일을 하지 않으실 것은 분명한 일입니다. 그리고 저 역시 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지옥이 순간적인 상태라고 본 것은 아닙니다.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지옥이란 완전하셨던 예수께서도 가셨다는 것을 볼 때 어떠한 악인들이 거하는 장소가 아닌 인류의 공통 무덤이라고 보는 것이 올바를 것입니다. 또한 에스겔 18장 4절에서 보시면, "범죄하는 그 영혼이 죽을 것이다"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우리의 몸 뿐만 아닌 우리의 영혼이 죽는다고 알려줍니다. 성서에서 영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잘 알고 계시겠죠? (아담에게 영혼을 불어넣으니 그가 살아있게 되었다는 점) 그리고 죽음이란 우리가 잠을 자면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잠자는 상태와 같다고 보아야 합당할 것입니다. 그 점을 요한 11장 11절부터 보시면, 예수께서는 나사로가 쉬고 있다라고 말씀하시면서 그는 "잠들어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때 사람들은 예수께서 잘못 알고 계신다고 생각하고, 13절에서 "저희는 잠들어 쉬는 것을 가리켜 말씀하심인줄 생각"하게 됩니다. 그 때 예수께서는 14절에서 분명하게 "나사로는 죽었읍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을 볼 때 나사로가 죽었을 때 어디에 가 있었다고 보아야 합당할 것입니까? 그는 올바른 사람이었기에 천당에 가 있었읍니까? 혹은 영원한 형벌이 있는 지옥에 가 있었읍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나사로는 분명히 죽어 있었고, 예수께서는 나사로가 잠자고 있다라고 말씀하시므로, "죽음은 잠과 같이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가 된다"라고 보는게 합당할 것입니다. 따라서 나사로가 부활되었을때 그는 천국에 대해...혹은 지옥에 대해 한마디도 언급한 말이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나사로가 죽어있었을 때는 아무 기억도 할 수 없었다고 보는게 합당할 것입니다. 여러가지 성서 문맥을 살펴볼때 죽음이란 단지 잠과 같은 것이며, 죽었을 때 천당이나 지옥에 대한 (그리스도교국의) 교리가 잘못되었다고 결론을 내리는 것이 합당할 것입니다.> [답변]-조정제 여호와의 증인 등들은, 영혼이란 피를 의미하며 죽으면 그 영혼은 소명을 한다고 믿습니다. (이들이 수혈을 거부함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피는 영혼이며 자기 영혼을 남에게 줄수 없다는 논리에서지요.) 그리고 님이 인용하신 여호와의 증인의 글에서 <영혼은 죽은다>라는 귀절 등은, 성서안에서 이렇게 단편적으로 있는 귀절들에 의하여, 여호와의 증인 등들은 사람이 죽으면 영혼도 죽으며 마지막 날까지 아무런 의식이 없는 상태로 존속한다고 합니다. 이러한 설명은 안식교 일부 종파에서도 그렇게 주장을 합니다만, 이러한 주장은 그야말로 성경을 자기 입맛대로 해석하며 자기의 가르침을 가르치는 거짓교사들의 전형적인 거짓말들입니다. 성서안에서 보여지는 서로 다른 표현들을 인식함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계시의 진행과 완결"이라는 테두리에서 이해 하셔야 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지옥은 없다, 죽은 후에는 특정 날까지는 천국도 지옥도 없다, 영혼은 소별한다" 등등의 주장에 대하여 제가 다음과 같은 글을 다른 사이트에서 올린 적이 있습니다. 이는 물론 제 개인의 견해가 아니라, 가톨릭교회의 공식적인 가르침(가톨릭교회교리서와 그 해설서)에서 정리 요약하고 그것을 제 표현방식으로 적은 글입니다. 제 글은 가톨릭신앙에 따라, "영혼은 불멸하고 지옥과 천국은 존재한다"는 것이 그 요지입니다만 이 기회에 한번 잘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영혼불멸은 없다? = 죽음은 무덤이다?^^>>> 대단히 난감한 표현입니다. 과연 가톨릭교회가 이단들의 거짓증언대로, 이교의 주장을 빌려 영혼소멸성을 부인하고 영혼 불멸성을 가르쳤을까요? (이집트 등에서는 고대로부터 영혼 불멸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이들 이단들은 가톨릭교회가 이들 이교도의 신앙을 기독교 신앙과 혼합하였다고 하는것입니다.) 우선 성서의 계시에 대하여 살펴봅니다. 성서는 각 시대에 따라 기술된 하느님에 관한 기록입니다. 하여 역사이래 그 시대 그 언어로서 씌여졌으며, 시대 시대마다 다른 배경 하에서 성서가 기록되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 하느님의 영감에 의해 기록된 말씀은 각 시대를 밝히는 지표가 되기도 하였고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삶의 기준을 보여 줍니다. 하느님은 말씀을 통해서 자신을 계시하여 왔는데 이는 계시를 한꺼번에 다 주셔서 " 너희는 이것을 다 믿어라" 가 아니고^^, 시대의 수준에 맞게끔 계시를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 계시는 드디어 신약 시대에 와서 "사도들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이 되었지요. 하여 계시의 정점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뵙고 가르침을 받고 들었으며, 눈으로 본 사도들의 증언을 통해서 우리는 하느님에 대하여 보다 잘 알아들을 수가 있습니다. <즉 이말은 신약시대에 완성되고 확증된 게시에 대하여, 구약 성서를 가지고 그렇지 않다라고 주장함은 가당치 않다는 것입니다. 구약에서 확정되지 않은 여러가지 계시의 진행에 따라 설왕설래 되었다 하여도, 신약에 와서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결정적으로 드러난 계시들에 의해서 가톨릭신앙-기독교신앙이 결정되기 때문이지요. 대개의 이단들은 구약성서의 특정 귀절들을 주로 인용하면서, 가톨릭교회를 부정하고 있지만^^, 가톨릭교회는 계시의 완성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설립된 교회입니다. 당연히 구약과 신약성서안에서 보여지는 계시들을,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가르칠 권한<=교도권>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이에 따라 하느님에 대한 신앙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구약에서 우리 사람에 관하여 여러 가지 표현으로 이해하였습니다. 특히 사람의 죽음에 대하여서는 바로 이 방에서 토론이 있는 것 같이 아마도 모든 종교의 사유에 대한 출발점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영혼불멸과 지옥에 대하여 논하기 위해서는 우선 죽음에 대하여 고찰을 하여 보아야 할 것입니다. 사람의 죽음이란 무엇입니까? 성서에서 사람이 죽음에 대하여 어떤 계시가 진행되었고 완성되었습니까? 구약성서에는 죽음에 대한 개념은 확실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죽음은 바로 죄악과 관련되었던 것입니다.(창세 2.16-17) 그러나 구약의 초기에는 인간이 지상에서의 삶이 끝이 난 후(죽은 후)에, "개인적 생명이 지속된다(영혼의 불멸)"는 인식은 분명하지 않았지요. 죽은 자들은 셰울(sheol)로 내려가고, 그 어두운 곳에서도 하느님은 계속 통치하시나 별 관심을 두지 않아 보입니다.(시편6.5) 묵시문학에서는 죽음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믿는 자에게 주고 있음이 나타납니다.(다니엘 12.1-14) 사람들의 영적 시야가 넓어져 하느님의 계시도 점차 발전되는 듯 합니다. 신약은 그리스도 예수를 죽음의 정복자로 보았습니다. 이제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죽음에 대한 여러 가지 사색보다는 " 다시는 죽음이 없을 시기." (요한 묵시록 21.4)에 고대하던 그리스도의 개선에 치중하였지요. 약속하던 재림은 이루어지지 않자 사도들은 여러 가지 설명도 합니다.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 구원되기를 기다린다" (베드로후서 3.4) 그리고 " 하루가 천년과 같고 천년이 하루와 같다."(베드로 후서3.13) 죽음은 소멸이라고 생각하던 구약의 초기의 관념이 신약에 와서 결정적으로 바뀌었음을 바울로도 예시합니다. " 육체를 떠나서 주님과 함께 영원히 살기를 원한다 " (고린토후서 5,8) 이 발언은 교회가 성령의 도움으로 죽음에 관하여 숙고하는 데에 지침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는 뜻밖의 시간에 오실 것이라는 경고는(마태.24,43-44) 개인이 죽을 때도 그리스도는 그렇게 오시는 것으로 이해되었습니다. <<참고 : 사도 바울로는 "죽음은 의식 없음과 영혼의 소멸"이 아니라 "의식을 가진 영혼의 영원한 삶"을 의미하는 것이 었습니다. 영원한 삶은 여호와 증인 등들이 주장하는 영혼은 피라던지, 영혼은 죽으면 그만이라는 요상스러운 주장들을 일거에 베어버립니다. 영혼이 피이며, 사람이 죽으먼 영혼도 죽는다면 왜 바울로 사도는 "자기의 마음 같으면 지금 죽어 영원히 살고 싶다고 합니까?^^">> 즉 사도 바울로는 사람이 이 생을 마치면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자신의 처지에 비교하여 부정하였습니다. (필립비 1.21-23) " 나에게는 그리스도가 전부입니다. 그리고 죽는 것도 나에게는 이득이 됩니다. 그러나 내가 이 세상에서 더 살아서 보람있는 일을 할 수가 있다면 과연 어느 쪽을 택하여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그 둘 사이에 끼어져 있으마, 마음 같아서는 이 세상을 떠나 그리스도와 함께 살고 싶습니다. " 바울로에 있어서 이 세상을 떠남(죽음)은, 구약에서 간혹 언급한 것처럼, 게헨나나 셰울이나 어두은 곳에 묻혀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히 사는 것" 이었습니다. 하여 교회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통해서 마지막 부활이 오기 전에 " 어떤 이는 이미 죽어 단련을 받고, 어떤 이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모습을 실제로 뵈오며 영광을 누리고 있다" 라고 다시금 장엄하게 선포하였던 것이지요.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보편(가톨릭)교회는 항상 사도들이 성서를 집필했던 의중과 거기에 맞는 종합적인 해석을 하여 왔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모범에 따라서 교회는 슬프고 한탄스러운 영원한 죽음이 있다는 것을 모든 세기를 통해서 경고하여 왔습니다. 성서는 영원한 벌에 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구약 초기에 대해서는 지옥에 대한 이해가 별로 없었습니다. 셰울은 선인이나 악인들이 죽은 후에 어둡고 불만스러운 실존형태를 견디면서 사는 장소라 여겨졌으나, 서서히 악인들이 벌받는 장소일 이라는 계시가 주어졌습니다.(계시의 진행) 시간이 흐르면서 죄악에 따른 적당한 벌에 대한 이해가 자라났습니다. 구약의 초기에는 벌을 물질적으로만 즉 병을 얻고, 시련을 받는다던지, 수명의 단축으로 여겨졌었지요. 그러나 가장 심한 벌은 "죄의 본질 안에 들어있다"는 것이 점차 밝혀졌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느님을 배척하는 것은, 마음이 갈망하는 무한한 선(하느님)에서 자신을 분리시킨다는 것입니다.(시편63.1) 구약에서는 게헨나, 벤 힌넘계곡에 관련하여 물리적 불의 형상이 지옥의 개념에 더해 졌습니다. 이사야는 이계곡을 하느님에 반란한 이들이 죽을 장소라고 말하고 있습니다.(이사야. 16.24) 랍비문학에선 게헨나가 악인이 죽은 후 벌받는 구덩이로 되었습니다. 그러나 계시의 완성자이신, 주님은 자주 지옥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 지옥 --- 꺼지지 않는 불"(마르코. 9.43)에 말할 때 이 최후의 비극에서 사람들을 멀리 쫓기 위해서 동정심을 가지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비극은 둘째 죽음(요한묵시록 21.8)이며, 인간의 목적인 하느님과 영원한 결합에서 분리되는 것입니다.(마태 25.31) 신약에서는 지옥 불이 끝이 없다고 자주 말합니다(마태 35.31) 그 당시 언어 표현대로 " 구더기도 죽지 않고 -- 꺼지지 않는 불에서 " (마르코 9.48)에 관해서 강력히 말씀하십니다. 이러한 지옥의 벌에는 두 가지의 요소가 잇습니다. " 저주받은 자들아 나에게서 떠나라" (마태 25.41)는 이 말씀은 지옥 벌의 가장 비참한 부분을 지적합니다. <<참고 : 사람이 죽어 영혼도 죽으니, 즉 "아뭇거도 의식하지 못하며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한다면, 예수님은 아뭇거도 없는 것, 무의식한 죽은 자에게 " 나에게서 떠나라" 라고 명령을 하신다는 것입니까?^^ 여호와 증인 등의 주장을 듣다보면 그들은 우리 주님을 바보로 만드는 무리들로만 보여지게 됩니다.^^ 마태 25.41은 심판에 관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말씀입니다.>> 하느님 안에서만 인간은 자신이 갈망하는 생명을 가질 수 있기에, 지옥은 "하느님과 영원한 이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 저주받은 자들은 성서가 언급하는 대로 " 영원한 벌"(25.41)로 인한 감관의 고통을 당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이 지옥불의 본성이 무엇인지는 규정하지 않았으나, 저주받은 자들의 벌은 손실일 뿐 아니라, 하느님과의 이별과 피조물이 야기하는 고통도 포함된다고 가르칩니다. 지옥 불은 대단히 큽니다. 그러나 과도하지는 않습니다. 가톨릭 신앙은 하느님이 의롭고 자비로우시므로 아무도 받아야 할 것보다 더 모질게 처벌되지 않는다고 가르쳐왔습니다. 사람의 몸은 죽지만 영혼은 자기가 믿고 행한 것에 따라 상과 벌을 받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로가 " 지금 죽어 그리스도와 함께 살고자 합니다" 라는 명언을 본받아 성녀 테레사는 " 이제 나는 죽으려 한다 " 라는 명언을 남겼습니다. 하느님을 왜곡하고, 하느님을 떠나 영원한 벌을 받으려니 차라리 지금, 순결한 상태로 죽어 그리스도와 영원히 살고자 하는 그리스도교인들의 참다운 종말적 희망을 볼 수가 있습니다. 거룩한 가톨릭교회는 성서와 풍요로운 사도들의 신앙의 유산안에서 죽음에 대하여 고찰하고 성서안에서 완성된 계시로서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선포합니다. " 사람의 죽음은 죽음으로 끝이 아니다. 죽음 후에는 하느님을 뵈오며 영원히 살든지, 하느님을 떠나서 영원한 벌을 받던지 양자 택일이다 " 이것은 종말에 관한 공적 계시의 완성인 것입니다.l " 내가 어렸을 적에는, 어린이의 말을 하고, 어린이의 생각을 하고 어린이의 판단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서는, 어렸을 때의 것을 모두 버렸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거울에 비추어 보듯이 희미하게 보지만, 그때에 가서는 얼굴을 맞대고 볼 것입니다. " (고린토 전서 13.11-12) " 나에게는 그리스도가 전부입니다. 그리고 죽는 것도 나에게는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내가 이 세상을 더 살아서 보람있는 일을 할 수가 있다면 과연 어느 것을 택하여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이 둘 사이에 끼어있으나 마음 같아서는 이 세상을 떠나 그리스도와 함께 살고 싶습니다. 그 편이 훨씬 낫겠습니다." (필리비 1.21-23) 예수 그리스도의 평화를 빕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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