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우수리스크 선교사 김용철 신부

2007. 9. 9. 12:19가톨릭세상보기

러시아 우수리스크 선교사 김용철 신부

홀로 행려인 복지관 건립 안간힘…장애인 연주단과 귀국 모금 공연


 
▲ 김용철 신부(가운데)와 러시아 연해주 우수리스크 장애인 연주단원들.
 
   7년 전 러시아로 선교하러 떠났던 김용철(작은형제회) 신부가 잠시 귀국했다.
 출국 때는 배낭 하나 달랑 둘러 멘 단촐한 차림이었는데 귀국 길에는 러시아인과 고려인을 합해 27명 대가족을 대동했다. 김 신부가 선교 둥지를 튼 연해주 우수리스크의 장애인 연주단과 현지 아리랑예술단의 고려인 단원들이다.

 우수리스크에서 행려자 복지관을 짓고 있는 김 신부는 8월 31일부터 사흘간 이들과 함께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건립기금 모금 자선음악회를 열었다.

 "소비에트 연방 붕괴 이후 거리에 행려자들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인구 20만 명인 연해주 제2의 도시 우스리스크만해도 겨울에 매일 10~15명이 거리에서 얼어죽는데, 시 당국은 재정이 없어 손을 쓰지 못하고 있어요. 더 심각한 것은 쥐꼬리만한 연금으로 살아가는 고령층은 당장 내일이라도 거리로 쏟아져 나올 수 있는 잠재적 행려자라는 점입니다."

 복지관 건립 과정은 한 편의 드라마다.

 러시아 가톨릭은 1917년 볼셰비키 혁명 이후 1990년 소비에트 연방 붕괴 때까지 '침묵의 교회'였다. 그는 신앙의 불씨가 완전히 꺼진 줄 알았던 우수리스크에 '마리아'라는 노인 신자가 산다는 얘기를 듣고 달려가 2001년 '성당'을 열었다. 가정집을 개조한 성당에서 요즘 20여 명이 주일미사를 봉헌한다. 가톨릭이 70여 년간 꽁꽁 얼어붙어 있던 정교회 국가에서 신자수 20여 명은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다.

 복지관 건립은 무일푼 이방인 선교사로서 엄두를 낼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소외된 사람들 중에 가장 소외된 사람들, 행려자들의 고통을 외면할 수 없었다.

 "건축비를 아끼기 위해 중국인 노무자들을 직접 데려오고 모든 건축자재, 하다 못해 못 한개까지 직접 사다가 직영 공사를 했어요."

 민간 복지사업 개념이 없는 시 당국은 "용도 변경해서 호텔이나 카지노를 열려는 것 아니냐?"고 반신반의하면서 건축허가를 내줬다. 마무리 공사 중인 3층 높이(건평 2031㎡) 복지관은 연해주 일대의 첫 사설 복지기관이다. 주민들은 5년은 족히 걸릴 공사를 1년 6개월만에 끝내는 데 대해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무일푼으로 시작해 건축비 15억 원을 조달한 것도 놀랍다.

 "그리스도인은 복음 안에서 불안정한 삶을 사는 존재입니다. 모든 게 불안정하지만 바탕에 복음이 있기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건축을 시작하니까 수도회 한국관구, 벨기에 작은형제회, 미주 재속회 등에서 도와줬습니다."

 그는 운영비 걱정도 하지 않는다. 걱정이 태산같아야 정상일텐데 천하태평이다.

 "지난 7년을 돌아보니까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하나씩 하나씩 풀어 주셨어요. 저는 행려자들을 통해 하느님을 만나고, 그들은 저를 통해 하느님을 만나는 것보다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복지관 후원 문의: 02-6364-5500 작은형제회. 김원철 기자 wckim@pbc.co.kr
 
[평화신문  2007.09.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