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8. 3. 10:05ㆍ가톨릭세상보기
성감별 허용을 우려하며
송열섭 신부(주교회의 생명 31운동본부 총무)
2008년 7월 31일 헌법재판소는 태아성감별 고지를 금지하는 의료법 제20조 2항이 헌법에 불합치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판결 이유는 크게 3가지로 보인다.
첫째, 낙태를 불법으로 규정한 법이 있는 상황에서, 그리고 낙태 자체가 불가능한 임신 후반기에도, 의료법이 태아 성별 고지를 금지한 것은 의료인의 자유와 임부의 알 권리를 지나치게 침해하는 것이라는 판단이다.
둘째, 모자보건법이 ‘유전적 결함’이나 ‘강간에 의한 임신’등 낙태가 허용되는 예외적 경우라도 임신 7개월(28주)이 지나면 낙태를 할 수 없게 규정한 점과 형법이 불법 낙태를 처벌토록 한 점이다.
셋째, 전통적인 남아 선호 사상의 완화도 헌법불합치 결정의 주요 근거가 됐다. 헌재는 2006년 기준 전체 성비가 여아 100명당 남아 107.4명으로 자연성비(106명)에 근접해 있는 점을 들면서 “성별 고지가 낙태의 원인으로 작용하는 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성감별 자체는 법적으로 윤리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다. 재판부의 설명대로 형법 제269조는 낙태죄를 규정하고 있고, 모자보건법 제14조는 낙태를 예외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그리고 의료인에게는 직업활동의 자유권이 분명히 있으며, 부모에게는 행복 추구권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성감별 고지를 통하여 부모는 태어나지 않은 아기의 성별에 따라 미리 이름을 생각해 볼 수도 있고, 출산 후 아기 용품을 준비할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태아성감별 고지 금지는 시대에 뒤떨어진 법이라 볼 수 있으며, 언젠가는 없어져야 할 법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현실에 있어서 과연 문제가 없는 것인가? 성감별이 분명히 낙태의 원인이 되고 있고, 교회는 이러한 행위를 부끄러우며, 철저히 비난받아야 할 행위임을 밝히고 있다(생명의 복음 63항 참조). 그리고 낙태를 금지하는 형법이나 일부 허용하는 모자보건법 제14조에도 불구하고 낙태가 만연되어 있고, 낙태의 90%이상이 불법으로 자행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심 법원에서 처리한 낙태죄에 관련한 판결이 2003년에 6건, 2004년 5건, 2005년 0건, 2006년 11건, 2007년 9건에 불과하며, 낙태는 언제 어디서나 암암리에 시행되고 있다.
보건복지가족부의 자료에 의하면, 연간 35만 낙태 중에 성감별로 낙태되는 건수가 2500여 건이 추정되고 있다. 이에 따르면 매일 7명의 태아들이 성감별에 의하여 낙태되고 있는 것이다. 남녀 성비에 있어서도 아직 문제가 남아 있다. 첫째 아이와 둘째 아이의 성비는 각각 여아 100명 당 남아 105.6명과 106명이어서 자연 성비인 106명에 이르고 있지만, 셋째 아이의 경우에는 무려 121명에 달하고 있다. 이는 두 명의 딸을 가진 부모가 `아들을 낳기 위해'' 셋째 여아를 낙태하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의사의 자유권과 부모의 알권리를 이유로 태아성감별 고지 금지법을 시대에 뒤떨어진 법이며 헌법불일치로 판결한 것은 아직도 성감별로 낙태되고 있는 말 못하는 태아들의 침묵의 절규를 들을 귀가 없었기 때문은 아니었는지 심히 우려하는 마음이다. 태아들의 부모나 관련된 의사의 알권리나 자유권에 비하면, 태아 자신이 누려야 할 생명권은 더 근원적인 권리이며 헌법이 마땅히 수호해야 할 인간존엄성의 기초가 되는 권리가 아니겠는가?
사람과 자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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